[판결남] 청각장애인에 ‘비대면 대출’ 거부한 은행…법원 “장애인 차별”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을 소개합니다.
요즘엔 코로나19로 이른바 '비대면' 서비스가 일상이 됐습니다. 최근 법원에선 청각장애인에게 '비대면 대출'을 거절한 건 장애인 차별이라는 판결이 나왔는데, 이를 소개해 드립니다.
■ 광양 사는 청각장애인에게 "대출 받으려면 수화통역사 대동해 수도권 방문하라"
앞서 2019년 전남 광양에 사는 중증 청각장애인 A 씨는 한 수도권 저축은행의 대출 광고를 보게 됐습니다.
이 은행 측은 서민금융진흥원의 보증 지원을 통해 대출을 지원해주는 이른바 '햇살론' 대출 상품을 광고하고 있었는데, 은행 측은 홈페이지와 광고기사 등을 통해 영업점 방문 없이 본인 인증만으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햇살론은 대출심사 전 △은행 측이 발송한 모바일 본인확인 문자메시지를 통해 신청자가 휴대폰에 성명,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 인증번호를 입력하거나 △공인인증서에 성명, 주민등록번호,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식 등으로 본인 인증절차를 거치는 상품입니다.
A 씨는 2019년 9월 은행 측에 휴대전화로 햇살론 대출신청 접수를 한 뒤, 전화 대출심사를 신청하기 위해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의사소통을 중계해주는 당시 한국정보화진흥원 '손말이음센터'의 도움을 받아 은행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은행 측은 A 씨에게 "청각장애인의 경우 수화통역사와 함께 본점을 직접 방문하여 본인확인이 되어야 대출이 진행되므로 유선상으로는 대출진행이 어렵다"며 대출 불가를 통보했습니다.
A 씨는 장애인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은행을 상대로 5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 법원 "전화 신청 가능한데도 직접 방문 요구…장애인 차별"
이 사건의 쟁점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여부였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7조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는 금전대출, 신용카드 발급,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한 차별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됩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부장판사 정용석)은 "A 씨가 유선으로 신청 가능한 햇살론에 대해 손말이음센터의 상담원을 통해 전화를 걸어 대출을 신청했음에도, 은행은 본인확인을 위하여 직접 방문을 요구하며 대출진행을 거절하였는바, 위와 같은 거절행위는 장애를 사유로 유선으로 제공 가능한 금전대출 서비스의 제공을 제한한 것"이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은행 측은 재판 과정에서 "손말이음센터의 상담원을 통해서는 원고 본인인증이 어려워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본인인증 확인은 성명,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인증번호를 누르거나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형태로 이루어지므로, 손말이음센터의 상담원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면서 "실제로 은행이 대출 거절 다음날 A 씨가 다시 대출심사를 청구하자 손말이음센터의 상담원을 통해 ARS 인증 본인 확인을 마치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은행의 거절행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은행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차별행위를 함으로써 A 씨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인정되므로, 은행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6조 제1항에 따라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은행 측이 사후적으로 원고에게 사과 문자를 보낸 뒤 손말이음센터 상담원을 통해 원고의 본인인증 확인을 마치는 등 대출 절차를 진행한 점, 피고가 이 사건 거절행위를 하게 된 경위 및 결과 등을 고려해 배상 액수는 30만원으로 정했습니다.
이 사건은 A 씨가 항소해 2심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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